리만머핀 서울은 이불, 토니 아워슬러, 맨디 엘-사예, 그리고 맥아서 비니언의 조각, 종이 작업, 그리고 회화를 아우르는 《인사이드 아웃: 더 바디 폴리틱 Inside Out: The Body Politic》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오늘날 강압적 시스템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저항에 발맞추어 각 작가들이 세계화, 테크놀로지 그리고 개인적 정체성과 연관된 정치라는 광범위한 개념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살펴본다. 이불(Lee Bul, b. 1964, 대한민국)이 유토피아적 이상에 관한 사회적 욕망과 그것의 필연적 실패를 조각 및 설치 작업을 통해 제시한다면, 토니 아워슬러(Tony Oursler, b. 1957, 미국 뉴욕주)는 기술이 인류와 인간의 심리를 통제하고 이해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본다.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 b. 1985, 말레이시아)는 끈질긴 탐구와 관찰 과정에 기반해 드로잉 및 회화 작업을 한다. 엘-사예는 자신의 작업 과정을 예상치 못한, 그리고 대개 혼돈스러운 방식으로 펼쳐지는 현대 사회의 현상과 정치적 사건들의 역학에 빗댄다. 반면 맥아서 비니언(McArthur Binion, b. 1946, 미국 미시시피 주)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개인사를 나타내는 이미지 위에 오일 스틱과 잉크를 이용해 여러 번 손으로 그리드를 그린 추상 회화 작업을 한다.
이불과 맨디 엘-사예는 외부적인 정치적 이슈와 관련된 작업을 한다. 이를테면, 사회 및 정치적 시스템의 광범위한 구축, 혹은 브렉시트(Brexit)와 같은 특정한 사건에 관한 것이다. 이불의 조각 작품은 기술발전을 통해 완벽성을 이뤄내려는 유토피아적 욕망과, 그 필연적 결과인 디스토피아적 의혹 및 실패와 같은 보편적 주제를 다룬다. 개인의 신체부터 도시와 유토피아와 같은 보다 큰 건축학적 체계와 같은 구조적 시스템을 탐색하는 이불은 인간의 형태에 대한 편견과 기술적 진보를 이용해 불멸을 추구하고 육체를 초월하려는 욕망을 시각화한다. <Untitled Sculpture W1>(2010)과 <False Azure in the Windowpane>(2013)을 통해 작가는 구조적으로 불안정한 듯한 두 건축적인 조각을 선보인다. 의인화된 특성을 포함하고 있는 두 작품은 마치 변형 또는 완성의 과정 속에 있는 듯, 안정성과 불안정성 사이를 맴돈다.
엘-사예의 작업 역시 신체, 언어, 정치적 질서 체계의 형성과 파괴를 탐구한다. 작가는 특히 다양한 국소적 상호작용이나 반복을 통해 나타나는 중요하면서도 예상치 못한 현상에 관심이 있다. 작가는 과학적 현상 및 자아에 대한 여러 가지 사례의 과정들을 탐구하면서 세심한 관찰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성하는 사회적, 정치적 요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Windows 4 (to leave)>(2018)는 대형 캔버스에 그린 섬세한 드로잉 연작 중 하나다. 엘-사예에게 있어 이렇게 물결치는 듯한 헤링본 패턴은 은유적인 ‘연결 조직’의 역할을 하는데, 이 푸른색은 한때 도시와 국가를 연결하는 주요 교통로 역할을 했던 수로를 가리킨다. 이 작품의 제목 <Windows 4 (to leave)>는 유럽 연합에서의 영국의 지위와, 동반자를 떠나는 것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 모두를 의미한다.
토니 아워슬러와 맥아서 비니언은 역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체계 및 구조와의 개인적 관계를 탐구하면서, 개인 관점으로부터 정치를 고찰한다. 1970년대부터 뉴미디어 장르의 선구자였던 아워슬러는 평면 스크린의 한계를 넘어, 조각과 다중 프로젝션을 결합한 입체 작업으로 옮겨가 자신의 작업에 영상을 접목하는 다양한 방법들을 개발해 왔다. 아워슬러 작업의 핵심에는 테크놀러지에 대한 작가의 고찰과 그것이 인류에게 미치는 지속적 효과가 자리한다. 아워슬러는 조각 작품에서 영상과 오브제, 그리고 사운드 사이의 불협화음을 만듦으로써 관람객으로 하여금 물리적 공간을 예리하게 인식하게 하며, 때로는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도 한다. <Reductio ad Absurdum>(2011)에서 작가는 얼굴과 형상이 겹친 영상이 삽입된 미니어처 프로젝터를 파편화된 아프리카 목재 조각 오브제에 설치했는데, 이 오브제는 부서진 아기 인형 머리, 작은 목재 동물, 목재 꽃꽂이와 추상적인 도자기 파편들로 한데 결합되어 있다. 조각의 바닥 부분에는 뒤집힌 도자기 형상이 매달려 있고, 이 조각 전체는 작은 프로젝터가 매달린 금속 구조물 위에 붙어 있다. 이러한 설치 방식을 통해 아워슬러는 억압과 정체성 구축의 체계에서 미술사의 대변과 그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이끈다.
아워슬러가 기술을 통해 이러한 이슈에 대해 탐구한다면, 맥아서 비니언은 인종과 정체성의 역사와 정치를 둘러싼 더 큰 문제들을 고찰함에 있어 개인에 그 초점을 맞추고 아날로그적 작업 방식을 고수해왔다. 비니언은 콜라주, 드로잉, 그리고 회화를 결합해 ‘표면 아래’에 깔린 개인적인 문서와 사진 위에 그려진 미니멀리스트 패턴의 자전적 추상화 작업을 한다. 작가의 출생증명서와 주소록의 페이지부터 그의 어린 시절 사진과 작가가 수집한 폭력적인 사진까지, 그의 작업의 바탕을 촘촘히 메우는 격자무늬의 비통하고 격앙된 이미지들은 오일 스틱으로 그린 그리드와 잉크의 세례에 의해 은폐되고 추상화된다. 비니언의 그리드 문양의 구성은 개인사의 다양한 결에 이성적인 질서를 부여하여 작가의 출생증명서 정보의 일부 혹은 어머니의 얼굴 일부만을 알아볼 수 있게 하지만 결코 한눈에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의 <dna:study>(2019)와 <white:work>(2019)의 첫 번째 레이어는 작가가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사용한 주소록의 복사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사와 작가로서의 역사 모두에 대한 미묘한 긍정은 일견 체계적인 그리드 레이어에 정체성 정치학의 레이어와 작가의 신체를 통합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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