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귀미(1985년 서울 출생, 현재 서울에서 거주 및 작업)는 풍경과 실내 공간, 그리고 고독이 지닌 정서적 울림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선명하면서도 시적인 색채를 통해 관찰과 상상이 교차하는 특유의 분위기를 구축하며, 기억과 사유, 존재의 찰나적 감각을 포착한다. 꽃이 만발한 언덕과 고요한 연못, 일상의 실내 공간 등 그의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평온한 풍경은 내면을 응시하고 사유를 확장하는 장소로 전환된다.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했으며, 회화를 단순한 재현이 아닌 환기의 행위로 이해하는 전통적 회화관을 작업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먹의 번짐이 만들어내는 겹겹의 투명성과 한국 전통 산수화의 절제된 조화는 그의 필치 속에 은은히 배어 있다. 이후 영국과 미국에 거주하며 유화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고, 외부 세계를 내면의 상태를 비추는 거울로 삼아온 서구 회화의 전통을 체화했다. 오늘날 그의 작업은 동서양 회화의 접점에 자리하며, 수묵의 섬세함과 유화의 깊이, 물질성을 아우르는 독자적인 회화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동시대 이미지 문화의 가속화된 리듬 속에서, 유귀미의 회화는 느리고 지속적인 응시를 요청한다. 〈Breath〉와 〈Rest〉와 같은 작품은 극적인 사건 없이 전개되며, 인물은 고요한 실내에 머물거나 열린 공간을 유영하듯 존재한다. 의미는 서사가 아니라 ‘이미지와 함께 머무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다. 그의 필치는 먹의 투명한 중첩과 전통 산수화의 절제된 균형을 환기시키며, 특히 정선의 〈인왕제색도〉에서처럼 형상과 기운이 분리되지 않는 회화적 감각을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정서는 또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가 활용한 ‘뤼켄피구어(Rückenfigur)’, 즉 관람자를 등진 채 화면 속 사유의 자리로 이끄는 인물의 방식과도 상응한다. 그러나 유귀미의 익명의 인물은 특정한 대리자가 아니라 느림과 성찰을 환기하는 ‘존재의 흔적’에 가깝다. 동시에 그의 작업은 기묘하고 낯선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초현실주의적 감수성과도 맞닿아 있으며, 색채와 스케일, 공간 논리의 미묘한 전환을 통해 일상의 장면을 지각의 경계이자 모호함이 깃든 장소로 확장한다.
유귀미는 아시아, 유럽, 북미의 주요 기관에서 폭넓게 전시해왔다. 주요 단체전으로는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미술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현대미술관 등이 있으며, 최근 개인전은 런던 알민 레쉬, 샌프란시스코 제시카 실버맨, 로스앤젤레스 메이크룸 등에서 개최되었다. 그의 작품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과 해머 미술관, 샌프란시스코 드 영 뮤지엄, 샌디에이고 현대미술관,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현대미술관, 오하이오주 콜럼버스 미술관, 캘리포니아주 코스타 메사 오렌지 카운티 미술관, 영국 로버츠 인스티튜트 오브 아트, 호주 멜버른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브라질 이니마 드 파울라 미술관, 중국 베이징의 X 뮤지엄과 상하이 유즈 재단, 서울대학교 미술관 등 국내외 주요 공공 컬렉션에 소장되어 있다.
